<종교칼럼>공인(公人)이면 공인답게 하라!
작성일 14-11-24 13: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마간다통신 조회 2,032회 댓글 1건본문
최근들어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공인들의
성추행 사건을 보면 정말 우리 사회의 종말을 보는듯 합니다. 전 청와대 대변인 윤*중, 전 국회의장 박*태, 전 법무부차관
김*의, 전 검찰총장 신*남, 제주지방 검찰청장 김*창, 서울대학교 교수, 국립병원장 등 적어도 국가의 핵심 공인의 자리에
있었던 자들이 권력을 남용한 건지 아니면 성적 욕구가 남보다 달라서 인지 딸 또래의 여성들을 성추행 하여 국가망신에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고 있습니다. 법으로 말하기 이전에 국가의 공직에서도 거의 수장의 자리에 있는 관직 공인들로서 인격이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폭력사회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시대가 이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필리핀에서도 얼마 전에 어느 시장의 외도와 살인사건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SNS와 뉴스에 보도되어 시끌시끌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직자들이 이렇게 드러나는데 기업문화 사회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뿐 더 심각할 것입니다.
지 난 몇 주 전 필자의 친구교회의 성도가 사업 문제로 일행과 함께 필리핀을 방문했는데 숙소가 전망 좋고 바닷가가 있는 모처의 골프 빌라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먼저 거처하는 장소를 확인하니 제 중학교 동창이 골프사업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중학교 동창이 있으니 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친구에게 연락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자기는 교회를 다녀서 저를 만나고 가면 그만인데 일행 중 한분이 공무원이 있는데 노출을 꺼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친한 초등동창 중에 사업하는 친구가 소위 골프접대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대충 감을 잡고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공인(公人)의 자리에 있다면 공직자로서 책임과 높은 윤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프랑스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고 합니다. 이 말뜻을 찾아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란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합니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직의 자리를 남용하여 일어나는 많은 부패들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큰 문제가 빈곤과 실업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실종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지도력 상실로 많이 좋아졌다는 공직사회 공인을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만 어렵지 부의 축적을 통해 가진 자는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경제가 어렵다는 한국에서 식사문화를 보면 결코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 급 음식점은 외제차로 메워져 있고 잘나가는 사모님(?)들이 대낮부터 계모임인지 동창회모임인지 몰라도 낮술에 취해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작은 식당들은 파리 안날리면 다행입니다. 먹거리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기업의 부익부 빈익빈,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공직의 부익부 빈익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부익부 빈익빈 등 너무 심화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보입니다.
가 난한 필리핀의 빈민사회를 돌아다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많이 느낍니다. 배고프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건지, 우기철만 되면 넘쳐나는 재난(災難)에 피할 때 없는 빈민들의 삶보다 나은 내 자신이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많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빈민(貧民)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행동에나 생각이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만큼 남은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먹는 만큼 남은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공직의 자리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갈 때 그 세금의 혜택도 제대로 못 받는 행복의 사각지대(死角地帶)의 서민과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공 직에 있는 자들은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공직의 부패에 대하여서는 절대로 관대하게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오죽하면 법을 아는 놈이 더 법을 안 지킨다고 하겠습니까? 과거 군사독재 정권때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라고 하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관군일체(民官軍一體)로 바꾸어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만큼 국민을 하늘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공인(公人)이 되었으면 공인답게 살라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외칩니다!
<고광태목사/다스마리냐스 남영한인교회 담임>
지난 칼럼에서 폭력사회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시대가 이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필리핀에서도 얼마 전에 어느 시장의 외도와 살인사건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SNS와 뉴스에 보도되어 시끌시끌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직자들이 이렇게 드러나는데 기업문화 사회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뿐 더 심각할 것입니다.
지 난 몇 주 전 필자의 친구교회의 성도가 사업 문제로 일행과 함께 필리핀을 방문했는데 숙소가 전망 좋고 바닷가가 있는 모처의 골프 빌라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먼저 거처하는 장소를 확인하니 제 중학교 동창이 골프사업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중학교 동창이 있으니 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친구에게 연락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자기는 교회를 다녀서 저를 만나고 가면 그만인데 일행 중 한분이 공무원이 있는데 노출을 꺼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친한 초등동창 중에 사업하는 친구가 소위 골프접대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대충 감을 잡고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공인(公人)의 자리에 있다면 공직자로서 책임과 높은 윤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프랑스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고 합니다. 이 말뜻을 찾아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란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합니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직의 자리를 남용하여 일어나는 많은 부패들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큰 문제가 빈곤과 실업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실종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지도력 상실로 많이 좋아졌다는 공직사회 공인을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만 어렵지 부의 축적을 통해 가진 자는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경제가 어렵다는 한국에서 식사문화를 보면 결코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 급 음식점은 외제차로 메워져 있고 잘나가는 사모님(?)들이 대낮부터 계모임인지 동창회모임인지 몰라도 낮술에 취해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작은 식당들은 파리 안날리면 다행입니다. 먹거리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기업의 부익부 빈익빈,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공직의 부익부 빈익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부익부 빈익빈 등 너무 심화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보입니다.
가 난한 필리핀의 빈민사회를 돌아다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많이 느낍니다. 배고프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건지, 우기철만 되면 넘쳐나는 재난(災難)에 피할 때 없는 빈민들의 삶보다 나은 내 자신이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많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빈민(貧民)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행동에나 생각이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만큼 남은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먹는 만큼 남은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공직의 자리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갈 때 그 세금의 혜택도 제대로 못 받는 행복의 사각지대(死角地帶)의 서민과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공 직에 있는 자들은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공직의 부패에 대하여서는 절대로 관대하게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오죽하면 법을 아는 놈이 더 법을 안 지킨다고 하겠습니까? 과거 군사독재 정권때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라고 하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관군일체(民官軍一體)로 바꾸어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만큼 국민을 하늘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공인(公人)이 되었으면 공인답게 살라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외칩니다!
<고광태목사/다스마리냐스 남영한인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