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통치기간 동안의 필리핀 학교>
필리핀에 현존하는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은 스페인 통치기간중에 설립되었는데, 그것들이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Colegios라고 불려졌다.
스페인 사람들은 특별한 교육단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학교를 의미하기 위해 Colegio와 Escuela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상, 그 당시에 소위 Colegio라고 칭해 졌던 몇몇 학교는 심지어 중등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 였다.
이러한 학교들 중의 하나로는 1595년에 지배계급의 아이들을 위해 설립되어진 콜레지오 데 마닐라의 부속학교인 콜레지오 데 니뇨스가 있었는데, 이 학교는 기독교 교리와 음악 그리고 수공예에 관해 가르쳤다.
중등교육을 제공했던 다른 콜레지오들은 스페인 자녀들을 위해 개방되었다.
이러한 학교는 심지어 필리핀 지배계급의 아이들에게도 무려 200년 동안이나 입학이 허가되지 않았다.
1995년에 예수회 수도사들에 의해 설립된 콜레지오 데 마닐라는 바로 그러한 학교중의 하나였는데, 장차 성직자를 꿈꾸는 학생과 그리고 고등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1601년에는 대학코스로서 철학을 제공했는데 3년후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필리핀학교로부터 첫번째 학위 소지자가 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예수회 수도사들이 나라에서 추방당했을 때 콜레지오 데 마닐라는 폐교되었다.
예수회 수도사나들은 또한 1601년에 성직자후보생들을 위한 학교인 롤레지오 데 산호세를 설립했다. 그러나 수도사들이 나라를 떠날때 마닐라 대주교에 의해 인수되 천주교 신학교로 바뀌었다.
또한 도미니코 회의 수도사들은 콜레지오 데 누에스트라 세노라 델 로사리오라는 문법학교를 설립했는데, 후에 콜레지오 데 산토 토마스라고 개명되었고, 1611년에는 고등교육학교가 되었다.
1645년에는 응용과학과 인문과학에서 학위를 제공할 권한을 얻었다.
콜레지오 데 산 쥬앙 데 레트란은 고아가 된 메스티조들을 위한 학교로서 시작했다. 1620년에 쥬앙 제로니모 게레토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이름은 콜레지오 데 니뇨스 휴에르파노 데 산 쥬앙 데 레트란이었다.
여학생들은 개별적교육기관에 갔는데, 고아인 스페인 여학생들을 위한 최초의 학교는 1594년에 개교식을 가진 콜레지오 데 산타 포텐시아나이었다.
1632년에는 콜레지오 데 산타 이사벨이 이를 따랐으며 1865년에는 두 학교가 합병하게 되었다.
수녀가 되고자 하는 여학생들을 위한 최초의 수녀원은 1621년 설립되었는데, 후에 리얼 모나스테리오 데 산타 클라라로 칭해졌다.
또다른 수녀원은 1696년 도미니코 회의 수도사들에 의해 설립된 비테리오 데 산타 카탈리나 데 시엔나로 산타 클라라처럼 단지 스페인 여학생들에게만 개방되었다.
일반적으로 남학생들은 문법과 인문과학하에 분류되어지는 과목들을 선택하였는데 문법은 기독교 교리, 스페인어, 라틴어, 문학과 웅변술, 예의범절과 위생학, 기하학 그리고 음악을 포함했으며, 인문과학은 논리학, 물리학, 윤리학 그리고 신학개론을 포함했다.
수업은 주로 스페인어로 진행되었는데 몇몇 기초과목에서는 따갈로그어도 사용되어진 것으로 알려지며 철학은 라틴어로 진행되었다.
한편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적은 과목을 공부하였는데, 윤리와 예의범절, 음악, 바느질 그리고 자수와 집안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몇몇 다른 수공예과목에 국한되었다.
1863년 12월20일에는 국가교육의 완전한 체제확립을 명시하는 율령이 통과되었으며, 남자교사들을 양성시키기 위한 학교인 에스큐엘라 노멀 엘리멘탈 또한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 이러한 학교는 그 당시쯤 필리핀에 다시 돌아오도록 허락되어진 예수회의 수도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1883년에 노멀 수피리어라고 개명되었으며, 중등학교를 위한 4년간의 교육과정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의 교육개혁은 너무나 늦게 찾아왔다. 중등학교들이 세워지고 노멀 수피리어의 첫 졸업생들에 의해 임원이 배치되고 있을 즈음 선전(Propaganda)운동과 필리핀 혁명으로 인해 필리핀에서의 스페인 통치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